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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화선 둘, 몽타주(생략)에서 그림(여백)으로 임권택은 생소하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자라온 사람으로서 그의 영화 취화선은 낯설게 보인다. 마치 종로(현대 문명의) 바닥을 돌아다니다가 광화문을 스쳐 지나갈때처럼 프로이트적으로 말하자면 Uncanny (기이한, 낯설은) 광경이다. 취화선에서 보여지는 계급과 그들의 예법, 생활양식에 있어 영화라는 서구적 프레임 안에 있는 것과 서구적 패턴에 익숙한 나의 관점도 한 몫 할 것이다. 여기서의 낯설음과 또 다른 낯설음이 취화선에는 존재하는데 그것은 영화에서 구사하는 영화적 문법의 몽타주이다. 이는 사건의 개연성과는 동떨어져 여느 영화와 달리 하나의 사건으로 집중되는 갈등, 고조의 인과관계와는 달리 신들이 분산되어 있고 개별의 에피소드로 가장해 낯설게 보여진다. 분명, 낯설은 지점에는 익숙하지 않은 서사.. 더보기
생활좌파 한동안 말을 많이 한 것 같다. 반복했고 스스로가 상기시켰다. 그 중 계급의 잣대에 대해서 꽤나 이야기를 했다. 간과했던 부분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곳에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계급이라는 것인데, 모종의 세습되었던 경직된 사고가 계급이라는 이름으로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지금은 전인교육(?)을 위한 대학교에 몸 담고 있는 노동자로서 학생들을 대면하는데에 있어 보수적인 방식으로 대하는지 조심스러워진다. 침묵이 가장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또한 혀를 놀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침묵하기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위협 요소를 제거하지는 못할 망정 즉시하고 주위를 환기 시키는 것이 오늘의 숙제, 내일의 과제이다. 딱딱한 책만을 보다가 얼마 전 목수정의 책.. 더보기
취화선 하나, 근대화로의 이동 취화선을 크게 들여다보면 근대화라는 개화시기에 맞물려 있는 장승업의 일생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장승업의 인간적 내면 고뇌를 그릴 것인가, 아니면 체제에 포섭 되어있는 즉, 시대상에 종속된 장승업을 보여 줄 것인가, 라는 것이 내게 보여지는 큰 갈래이다. 주변인물의 설정은 흥미롭게도 김병문은 개화파 지식인으로 그려지고 매향은 천주교 신자로 등장한다. 둘은 근대화 진입해 있는 인물임에 반면 장승업은 전근대적 인물로 보여진다. 이에 감독의 시선은 근대화의 부정으로 보이기도 하고 사회에 포섭되지 않은 아나키적 예술가의 모습과 예술적 고뇌에 시선을 맞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병문은 장승업에게 개화파 관점에서 계몽주의적이며 그림은 민중의 삶과 닿아있어야 한다하는데 마치 샤르트르가 말하는 예술은 민중에게 전달되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