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louissance 내가 질투하는 것은 결국 타자가 향유하고 있다고 내가 상상하는 것이다. “저 둘 사이에는 내가 접근할 수 없는 어떤 향유가 있다.”“타자는 나보다 더 향유하고 있다.”잉여향유“그럼 인간은 결핍을 채우려고 욕망하는 게 아니라, 결핍을 계속 만들어내기 위해 욕망하는 것인가?” 더보기 오디세이 ‘이후 청동기 시대의 붕괴, 기독교의 속죄(atonement)와 고대 그리스의 크세니아(xenia), 오디세우스의 오만(hubris), 특히 민주주의 시대에 ‘위대함’은 사과하는 방식으로 재현해야한다는 말에 꽂혔다. 이거 진짜 대박이다. 이 통찰 하나로 난 놀란을 존경하기로 했다. 심지어 영화도 볼거다.크세니아는 낯선 사람을 손님으로 받아들이고 보호하고 대접하는 고대 그리스의 환대 규범이다. 놀란은 이를 “Zeus’s law”, 제우스의 법이라고 부른다.내 생각에 크세니아는 단순히 “친절하라”는 도덕률이 아니다. 타자를 판별하기 전에 타자가 들어올 자리를 먼저 만드는 것, 즉 언어 자체의 affirmation이다.상대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다. 아직 네가 무엇을 말할지 모르지만, 네 기표가 들어올 .. 더보기 홍상수 홍상수 영화는 사회적 통념이나 고정관념에 저항하는 것을 넘어, 상징계(언어의 세계) 자체를 거부하는 구도를 가지고 있다. 영화 속 대사들은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오염되거나 찢어진 의미로 전달되며, 이는 무의식의 농담으로 작용한다. 이를테면 자신이 들었던 교훈을 남에게 다시 말하는 식의 바보 같은 재담을 통해 의미가 사라지고 기표만 남게 된다. 홍상수 영화에서는 삶의 진리나 교훈을 찾을 수 없으며, 영화 감독이 무엇을 의도했는지 묻는 것 자체가 무색하게 찢어진 커튼(가상계의 파괴)처럼 구조가 뚫려 있다. 이러한 영화 구조를 통해 우리는 일상생활의 진리(환상)로부터 벗어나 무심한 실제를 경험하게 되고, 20세기 예술가 게르하르트 리터의 작품처럼 사진(가상) 위에 물감을 덧칠하여 원래 이미지를 훼손하는 .. 더보기 이전 1 2 3 4 ··· 5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