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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백하다 둘,


히치콕은 나에겐 통속적인 것이기도 하다. 히치콕 영화, 히치콕에 관한 정보는 포화상태일 정도로 그동안 축적해놓았던 영화적 문법을 비워내고 새로운 시점으로 보려고 한다.

'나는 결백하다'를 수업시간에 서스펜스라는 장르를 토대로 진행되었는데 전혀 집중이 되질 않았다. 긴장감의 히치콕은 이제 나에겐 진부했던 것이다. 물론, 히치콕의 관객으로 하여금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수사적 문법은 매력적인건 분명하다. 어쨌든 한시간의 짧은 단상을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자. 인물구도와 사건에서 뻔한 긴장감의 미시적인 시각보다 멀리서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싶은데 그 중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부르주아 계급의 조롱과 풍자, 그리고 죄의식에 관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부르주아의 계급의식은 표상적인 미로 대변하는데 (형식만 있고 내용은 없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영화에서 사건의 동인인 보석의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미와 일치한다. 그들의 내면화된 부의 속성 또한 감각적이라서 영화에서 술에 취해 대화를 하거나 감정의 과잉으로 보이는 비명은 그들에 속해있지만 침착하고 영리한 프란시스라는 인물의 장치를 통해 대비시킨다. 그들의 대화와 행동을 미루어 봤을 때, 로비를 감각적으로 수용하는 어머니와 달리 프란시스는 위트와 기개가 넘치는 방식으로 로비에게 접근하는 것의 대립점을 구축해 히치콕은 부르주아에게 조소를 보낸다.

두번째로 죄와 죄의식이다. 로비 자신이 결백하다고 수소문을 하는 상황과 좇고 쫒기는 미로와도 같은 동선은 미묘한 방식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끌어들인다. 이에 죄의식과 관련되어서 인물들간의 대화와 정보가 우리에게 쥐어준다. 수십명을 살해하고 개의치 않고 음식을 먹는 로비는 고해성사 아닌 태연한 고백을 하는데 영화 진행상에 로비에게 동화되었던 관객은 적잖이 놀라고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호텔에서 재떨이를 가지고 온것부터해서 보석절도와 살인 등 우리가 세워놓았던 윤리적 의식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다. 여기서 죄와 죄의식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이데올로기와 제도로 인해 우리에게 관습되어온 남의 사유재산을 탐하지말고 이웃을 살인하지 말라는 금기시되는 도덕적 체계가 적나라하게 뒤집어 진다. 터부시 되었던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은 무의식적 충동질이 로비의 반체제적인 모습에서 (영화에서도 레지스탕스라는 정보가 쥐어주듯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에 히치콕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우리에게 도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로비가 있는 스크린 안에 뛰어들어 완벽하게 로비가 되었거나 공모자가 되었다면 히치콕의 '금기의 영역' 속박에서 벗어나 완벽한 역할을 해낸 것이다.  

여담으로 수업에서 영화를 보자마자 즉흥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서스펜스의 일종이다. 그것이 선생님의 기대감과 일치해야 되는 것 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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