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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1. 음성 존재10) ​ 최초의 숨바꼭질 ​ 인간의 시각은 영화처럼 부분적이고 한 방향을 향해 있지만, 청각은 사방을 향해 열려 있다. 우리는 뒤에 있는 것은 보지 못하지만 사방의 소리를 듣는다. 아마도 귀가 가장 먼저 발달하는 감각이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태아 단계에서부터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태어나서도 그 목소리를 식별한다. 반면에 시각은 출생 이후에야 기능을 하기 시작하지만 형태와 개념, 특히 명명에 관하여서는 촉각이나 후각, 심지어는 청각도 견주지 못할 만큼 독보적으로 막대한 목록을 보유함으로써 적어도 서구 문화권에서는 가장 조직화된 감각이 되었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시각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는데, 형태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알아보는 것이 평가를 내리는 그 어떤 일보다 훨씬 .. 더보기
내가 된다는 것 인류의 지위를 끌어 내리려는 시도. 끊임없이 세상을 발명하고 매 순간 오류를 수정하는 예측 기계. 더보기
탈주 첫번째 탈주. 철학사에 굳이 끼워넣자면 쇼펜하우어는 칸트 이후의 관념론에 속할 것이다. 실제로 칸트에 대한 대강의 이해 없이 쇼펜하우어를 제대로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타의 관념론들과는 달리, 쇼펜하우어의 관념론에서는 관념적인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관념론들은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이념적인 또는 이상적인 것을 지향하기 마련인데, 쇼펜하우어의 관념론에서는 그런 지향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탈이상화된 관념론'이라고 할 만하다. 아이디얼한 것에 대해 말을 아끼는 아이디얼리즘인 셈이다. 두번째 탈주. 신랄하게 세속을 조롱하고 단호하게 인간들의 '급'을 나누는 그의 윤리는 명백히 보수적이고 귀족적이다. 그런데 이런 윤리관은 역설적으로 당대에 형성 중이던 시민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기능하기도 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