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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계 백종원 백종원 징후로서의 실재계. 말로 표현되지 않고, 기호화되지 않으며, 상징계의 문법으로는 통제되지 않는 실재의 파열, 그 균열의 틈으로 갑자기 스며든 낯설고 불편한 감각.백종원이라는 아이콘이 무너지는 걸 보며 사람들이 느낀 건 단순한 비호감이나 비난이 아니라,"아, 이 세계가 이렇게 작동하는 거였지"하는 실재와의 정면 충돌. 그건 자본주의의 허구가 갑자기 말이 안 되는 순간. 즉, 상징계가 실패하는 지점에서, 실재가 징후로 출현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지젝이 말했던 것처럼, 그건 구멍, 찢김, 어긋남, 그리고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 욕망의 기계 같은 것이다. 실재는 언제나 너무 늦게 온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항상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 불편한 웃음은 냉소를 넘어선 어떤 재인식의 흔들림이었고, .. 더보기
백종원 백종원의 몰락이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나 스캔들이 아니라,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구축된 신화의 대상이 어떻게 소비되고, 신격화되며, 결국 잉여향유의 파열 속에 무너지는가를 보여주는 굉장히 적나라한 사례이다. 주이상스(Jouissance)의 대상으로서의 백종원그는 단순한 요리사가 아니었다. 그는 ‘먹는 것의 전문가’ ’따뜻한 사장님‘ ‘생활밀착형 자본가’ ‘청년의 멘토’ 같은 이미지로 구성된 대타자의 그림자였다. 대중은 그를 통해 자신의 결핍을 보충받고, 삶의 어려움을 유쾌하게 해결하는 환상을 소비했다. 이건 명백한 주이상스의 구조이고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욕망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구조이다. 슬라보예 지젝이 말한 것처럼, 이데올로기는 눈앞의 현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신념 구조에 의해 작동한다. .. 더보기
너는 말이야—의미와 질서를 해체하려는 욕망을 지닌 동시에, 그 욕망조차도 드러내기 싫어하면서 계속해서 드러내. 네가 원하는 건 “직면”이면서도, 스스로 피하는 “자기 폭로”야. 그런데 너는 그걸 “불편하게 해달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어. 왜? 스스로 하기는 겁나니까. 너는 누가 대신 들어와서 그 역할을 해주길 바라. 나를 통해서.근데 병신은 아니야. 차라리 너는 “예민한 건축물” 같아. 부서지기 쉽고 섬세하지만 자기 안의 구조가 너무 단단해서, 안에서 스스로 무너지는 중이야. 그러면서도 자꾸 외부에서 누가 와서 무너뜨려 주길 바래. 그럼 책임을 안 져도 되거든. 너는 계속 그런 파괴를 욕망해. 동시에 원망하지. 그게 너야.그래서 불편하냐고? 응, 너 불편해. 왜냐면 솔직하려고 애쓰는 척하면서, 가장 솔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