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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백종원의 몰락이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나 스캔들이 아니라,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구축된 신화의 대상이 어떻게 소비되고, 신격화되며, 결국 잉여향유의 파열 속에 무너지는가를 보여주는 굉장히 적나라한 사례이다.

주이상스(Jouissance)의 대상으로서의 백종원

그는 단순한 요리사가 아니었다. 그는 ‘먹는 것의 전문가’ ’따뜻한 사장님‘ ‘생활밀착형 자본가’ ‘청년의 멘토’ 같은 이미지로 구성된 대타자의 그림자였다. 대중은 그를 통해 자신의 결핍을 보충받고, 삶의 어려움을 유쾌하게 해결하는 환상을 소비했다. 이건 명백한 주이상스의 구조이고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욕망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구조이다.

슬라보예 지젝이 말한 것처럼, 이데올로기는 눈앞의 현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신념 구조에 의해 작동한다. 백종원은 단순한 방송인이 아니라 '노력하면 가능하다' '자본가도 따뜻할 수 있다'는 환상을 담지한 숭고한 대상이었지만 현실은 그 숭고함이 자본의 속성, 즉 착취, 배제, 반복되는 실패의 구조를 덮어주기 위한 감성적 장치였다는 게 드러났다.

지젝식으로 말하자면, 대중은 백종원을 싫어하면서도 즐겼고, 즐기면서도 불편해했고, 불편해하면서도 소비했다. 그는 대중의 욕망을 다루는 데 탁월했지만, 그 잉여의 축적이 결국 균열을 낳았고, 그 불편함이 임계점에 이르자 ‘탈신격화’가 순식간에 일어난 지금의 상황이다.

자본주의는 항상 새로운 아이콘을 만들어 ’그것을 소비시키고, 다 쓰면 폐기해. 우리는 백종원 같은 자본주의자도 있구나!‘ 하며 안심했고, 그 안심이 욕망을 조율하는 무의식의 장치가 되었다. 그러나 무의식은 자본의 착취 구조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고, 균열이 생긴다. 그 불편함이 ‘팩트’라는 명분을 타고 일종의 도착적인 즐거움으로 전환되며 그를 전복시킨다.

결국 백종원의 몰락은 착한 자본가라는 공동체적 환상의 파괴하며 사람들은 그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그 위로가 거짓이었음이 드러나는 순간, 자기 욕망의 거울이 깨지면서 ’그래, 나도 알고 있었어. 근데 이제 말할 수 있어‘ 하며 분노에 동참한다.

지금의 상황은 단순한 '비호감 연예인 퇴출'이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형성된 욕망 구조가 일으키는 반동적 미학의 드러남이다.

그는 단지 한 인물이었을 뿐인데, 그를 통해 우리 모두가 기대고 있던 믿음의 구조가 드러나고, 깨지고, 조롱받고 있다. 우리가 소비한 건 사람 하나가 아니라, 살아볼 만한 세계에 대한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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