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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 그 자체가 진실이다.

자폐적인 레오스 까락스는 분명 도쿄를 미디어로 접했을 것이다. 단지 매스 미디어에서 옮겨진 도쿄의 정보 몇가지로 광인은 탄생한다. 정보와 정보사이에는 간극이 있어 도쿄라는 도시의 이야기는 사이사이가 비어져 광인이 지하세계에서 양지로 나왔을땐 까마귀 울음으로 그 공간을 메어준다. 마치 그 울음은 레오스 까락스의 일본에 대한 공허한 경고장과도 같았다.
'나쁜피'에서 데이빗 보위의 모던러브와 함께 질주하던 드니라방이 이번엔 긴 호흡으로 도쿄거리를 활보한다. 이미 광인은 유명인이 되었고 온갖 만행은 시민들의 스몰 브라더로 전파를 타고 미디어를 통해 광인이 만들어진다.
광인은 맨홀 아래에 있는 세계에서 우연히 보게된 수류탄을 도시에 투척하여 경찰에 의해 체포된다. 이에 방송은 광인에 대한 온갖 루머를 내보내고 그에 대한 추종자 세력과 피규어까지 만들어진다. 여자앵커는 그의 살상에 대해 쉼없이 떠들고 심각한 얼굴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앵커는 일본의 미디어에 대한 맹신과 닮아있다. 군복을 입고 아수라장을 만든 광인은 일본의 군국주의 원형이기도 하다. 과거에 묻혀있던 욱일승천기. 즉, 제국주의의 잔재는 광인이 맨홀 뚜껑으로 나오는 것을 통해 아직도 군국주의적 사고가 일본사회에 남아있다는 것을 말한다.
사형선고를 받은 광인과 언어가 통하는 동일한 종의 저명한 변호사가 프랑스에서 도쿄로 날아온다. 그와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기괴한 언어에 미디어는 집중한다. 여기서 광인의 이름은 메르드라고 알게되고 (메르드는 배설물을 뜻한다고 한다) 그들의 생소한 언어에 미디어는 주객전도된다. 그들의 제 3의 언어가 주체가 되어 불어에서 일본어로 통역되는데 법정에서 메르드의 말이 아닌 삼중으로 번역된 자국의 통역관을 통해 시민들은 탄식하고 분노한다. 의심의 추호도 없이 그들의 언어와 의사소통이 진실이라 믿는 일본인들은 우스꽝스럽게 보여지며, 메르드라는 매개를 통해 변호사는 일본의 현 세태의 비판적인 시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한다.
결국 교수형을 선고받은 메르드는 담담히 교수대에 오른다. 유리 프레임 반대편에는 사형에 처해질 메르드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신에 대한 기도를 드리고 메르드는 사형집행 된다. 죽음을 확인한 찰나 몸을 긁는 메르드. 지켜보던 이들도 놀라고 '신도 이제는 늙었군.'을 읊조리며 메르드는 사라진다.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은 죽은게 아니었다는 유리 프레임에서 보여지는 마치 거짓 TV를 보게된다. 공교롭게도 수직구조인 교수대에서 위 쪽 프레임(도시)에서 아래 프레임(지하세계)으로 죽을줄만 떨어진 메르드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게된다. 의미심장한 마지막 대사 '신도 이제 늙었군.' 신에 대한 조롱은 미디어가 곧 신을 지칭하는 일본의 현재의 모습이며 진실은 우리가 보고있는 미디어가 아닌 줌인 된 환풍구 (메르드가 사라졌을법 한 통로) 속 저 어딘가 어둠에 있다는 것이다.
어둠속에서 맨홀 뚜껑을 열고 나와 도시를 활보하는 광인처럼 과거의 진실은 묻혀져 있지않고 현재를 위협한다. 이에 도쿄에서 출몰하는 광인은 과거의 잔해와 현재 일본의 시공간을 관통하는 이념적 존재가 된다.

여담; 도쿄에서 기이한 유머로 단연 돋보이는 영화였다. 오랜 팬으로서 레오스 까락스와 드니라방의 16년만에 재회만으로도 설레였다. 최근 레오스 까락스 인터뷰에서 대사없이 몸으로 하는 연기가 좋다고 했는데 역시 그의 페르소나답게 도쿄의 드니라방은 육체의 언어로 말을 했다. 함께 극장을 찾은 여자친구는 광인의 몸짓을 보고 자신의 연기관에 대한 정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레오스까락스 영화이자 드니라방의 영화이기도 한 도쿄에 그치지 않고 어서 예전의 주옥같은 장편영화를 또 한번 만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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