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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

하나

"현존(presence) 또는 존재감(sense of being)에 몰입하는 명상의 최대 이점은 일체의 잡념이 잦아든다는 점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는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모든 생각이 사라진다고 말했는데, 명상에서도 그와 비슷한 방법이 사용됩니다. 모든 생각의 원점은 자기가 있다는 존재감이기 때문에, 그 존재감 자체에 또렷하게 초점을 맞춘 채 머무를 수 있다면 생각이 애당초 출발을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좌표를 찍지 않고 원점에 머무르는 거죠. 마치 텅 빈 모니터에 깜빡이는 커서 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자기 자신을 안다'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어떤 친구는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의 취향이 어떤지, 내가 어떤 캐릭터의 사람인지를 아는 것으로 생각하더군요. 여러 인생 경험을 쌓으면서 그런 걸 하나하나 알아가는 게 의미있는 일이라고요. 이게 아마도 '자기 자신을 안다'라는 말의 통속적인 의미일 겁니다. 그런 류의 자기 탐색이 즐거운 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그와는 다르고, 심지어 반대되기까지 합니다."

"자신의 존재감에 몰입하는 경험이 반복되다보면 역설적이게도 이걸 좋아하고 저걸 싫어하는 나만의 성향, 이러저러한 나만의 캐릭터 등이 용해되거나 풍화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건 다 특정 좌표일 뿐이니까요. 명상이 자기계발이 아니라 자기파괴이고, 성장보다는 해체에 가깝다는 가장 확실한 체험적 증거입니다. 취향도 캐릭터도 없습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생생한 경험만이 충만합니다."

"명상은 소확행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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