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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

프, 융

프로이트는 신경생리학자로 활동한 기간이 정신분석을 창시하고 보급한 기간보다 훨씬 길다. 그는 당대 최고의 과학적 훈련을 받은 정통 신경생리학자로서 실어증 연구에 중요한 기여를 했고, 말년에는 미래의 발전된 생물학에 의해 자신의 이론이 반증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마음을 탐구하는 과학자로서의 마지막 양심을 지키려 했다.

프로이트가 그의 유사-과학적 측면들 때문에 안 먹어도 되는 욕까지 먹는 경향이 있다면, 융은 적극적으로 신비주의라는 연막을 친 덕분에 먹어야 할 욕도 안 먹고 있다. 프로이트가 50퍼센트는 맞지만 100퍼센트 틀렸다면, 융은 50퍼센트조차 틀릴 수 없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맞았던 그 50퍼센트는 신경생물학 속에 살아남아 정동신경과학(affective neuroscience)이나 꿈 연구, 정신병리학에 흥미로운 단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신경정신분석(neuropsychoanalysis)이라는 분야로 발전하기도 했다. 반면에 융은 신경생물학의 성취와 설명력에 방어적으로 대응할 때나 종종 호출될 뿐 과학적으로 딱히 기여한 바를 찾기 힘들다. 프로이트의 폐허에서는 새롭게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융은 그런 폐허조차 남기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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