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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


상상 속에서 현재 실존하는 누군가를 죽여 보았는가? 그것도 가까운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증오를 넘어 반인륜적인 행태가 가해지는 그 먹물 구덩이 속에서. 상상 속에서는 반인륜적인 따위의 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의식하는 원활한 상호관계를 위한 대의, 언어를 형성하는 상징적인 체계는 가물거린다. 구분짓던 것들은 사라진다. 오로지 자율의지만이 나아간다. 가역적 운동. 단, 주위의 소리와 불안해 보이는 시선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각은 이어지지 않는다. 불연속적이다. 이내 핏빛 난도질에서 말끔한 신사로 돌아온다. 격식있고 품위있는 수트를 입은 채 항상 그 시각에 문을 나선다. 신사라는 덧입혀진 것. 매무새, 볼에서 가시지 않은 스킨의 향. 오감으로 지금 그 혹은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다. 다시, 미치도록 어떤 것을 갈구한다. 자신과는 다른 어떤 것과 교섭하여 자기의 자립성을 잃게된다. 호기를 부리고 인내와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갈망하는 자기와는 다른 어떤 것 때문에 자신을 수습하지 못한다. 욕망의 정서. 육체와 이성은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저항없이 받아들이는 불가항력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어진 것보다 삶 속에서 그것들을 갉아내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마치 디지털 사진기와도 닯아있다. 버리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과도 같이 건강은 앗아가기 위해 있는 것이다. 과잉의 존재. 판단력이 희미해지면서 한동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구두 끝에서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먹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감각과 이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답을 구하자 다시 질문이 떠오른다. 상상 속에서 지금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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