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소설을 읽지 않다가 신작 소식에 급히 주문을 해서 하루키와 김훈, 장정일까지 읽었다. '1Q84'에서 '공무도하', '구월의 이틀'까지 읽어 내렸는데, 지금은 천명관의 '고래'를 읽는 중이다. 하루키는 근작들의 맥을 이어 특수한 숙명을 짊어진 이들의 공간으로 메워졌고, 김훈의 자신의 특기를 살려 기자의 관조적인 시선으로 세계를 무심하게 들여다 보았다. 가장 반가웠던 장정일은 그의 전작 '공부' 서문에서 밝혔듯이 강경한 어조로 중용은 무식함을 고해성사하는 것임을 성장기 소년들의 인생의 한순간인 청춘에서 말한다.
분명 이들 신작은 인상적이었으나 문학의 갈증은 해소되지 못한것은 사실이다. 하루키만의 고유한 얼개의 요소들과 등장한 이들의 취향은 여전했고, '공무도하'는 군상의 보편적임을 들쑤셔 몰개성화 되버리는 허무주의 시선은 좀처럼 눈이 글귀를 따라가지 않았다. 장정일을 읽는 동안 실명이 거론되는 정치판, 동성애, 인문학적 소양과 문학,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성장기 소설이라기 보다는 균형이 없는 주마다 연재되는 칼럼을 보는 듯 했다.
이처럼 문학의 목마름은 계속되는 찰나에 우연하게 읽게된 천명관의 소설 '고래'는 한마디로 그동안의 묵은 체기가 내려갔다. 일단 그 시원함은 막힘이 없고 감히 상상하자면 작가는 손이 하는대로 내버려 뒀을 것이다. 한국판 천일야화를 위해 손을 제외한 나머지의 육체는 상상력에 내맡기고 손은 보고서를 작성하듯 쉼없이 써내려갔을 것이다. 얼마만에 아껴본다는 표현을 쓰는 것인가, 그만큼 책장이 줄어들을수록 조바심이 나는 소설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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