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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크레딧



영화를 보다 보면 오프닝 크레딧의 인상이 나에게 본 영화보다도 훨씬 각인되었다. 데이비드 핀쳐 영화와 박찬욱 영화가 그렇듯이 오프닝 크레딧은 나에겐 영화의 상승작용이자, 영화의 절반이었다. 고등학교때 영화를 만든다며 8미리 무비캠을 들고 인천 앞바다에서 설쳤을때만 해도 오프닝만 밤새워 콘티를 짜고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지 남은 멍석은 우연에 의한, 즉흥에 의한, 취기에 오른 멋 모르는 자신감에 기댔었다. 아직도 손에 들려있는 캠코더와 이미지를 다루는 나로선 지금까지도 오프닝 크레딧은 동경의 대상이자 따라잡고 싶은 대상이다.

근래 미디어에서 뱉어내는 모션 그래픽은 숨이 막힐 정도로 역동적이며 쾌(?)의 탄성을 지르게 된다. 다행스러운게 지금은 모션 그래픽을 다루는 툴이 간소화 되어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나같은 얼치기도 컴퓨터에 앉아 간단한 타이틀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모션의 일색이다, 디자인은 디자인일 뿐이다, 라는 지지부진한 묵은 생각은 집어치우고 조금이라도 숨막히는 오프닝 크레딧을 만들어내고 싶다. 다른 말로 하면 그동안 미술 앞에서 이해보다 지연되는 지적인 운동 때문에 지리멸렬한 것이 있어 지성을 쏙 빼낸 시각의 즉각적이며, 촉각적인 원시성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큰 것도 있다.

위의 연유로 며칠전부터 내 하드 디스크에는 토막난 작업들이 불어나고 있는데, 시작이자 끝인 오프닝 타이틀이다. 일만 벌여놓고 거들떠 안보는 내 습성을 반영하듯 내 인생의 토막도 이렇게 흘러 가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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