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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기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몸과 세계가 만나는 곳, 정확히는 느낌이 사라지면서 움직임이 시작되는 곳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대표적인 곳이 '혀끝'과 '손끝'일 것이다. 머릿속의 창의성이 말, 글, 그림 등으로  표현되는 게 아니라, 수많은 표현들 속에서 창의성이 싹트고 자라나는 것이다. 세계와 만나 뭔가를 느껴버린 몸은 그 느낌을 확인하고 표현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느낀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몸은 세계와 만나야만 한다. 세계와의 인터페이스 이전의 창의성은 창의성이 아니라 막연한 느낌에 머무른다. 그 느낌에 구체적인 형상과 내용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실재 세계 뿐이다. 그리고 몸은 구체적인 세계와 막연한 느낌 사이에 낀 채 움직이고 있다.

말이 탄생하는 혀끝,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손끝,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온몸에는 언제나 창의성을 획득하기 위해 분투하는 무수한 상상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창의성을 위해서는 머릿속으로 기어들어갈 것이 아니라 혀와 손을, 온몸을 부지런히 놀리며 세계와 끊임없이 부대껴야 하는 것이다. 창의성은 신체적이고, 물질적이며, 구체적이고, 상황적이다. 더듬거리고, 꿈지럭거리고, 우물쭈물하고, 꾸물거리고, 깨작거리고, 까딱거리고, 어슬렁거리고, 웅얼거리고, 중얼거리고, 만지작거리고, 조물락거리고, 문지르는 곳에서 출현한다. 그렇게 낯선 느낌이 낯선 움직임이 되는 곳에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경계는 허탈할 정도로 쉽게 무너진다. 창의적인 몸은 창의적인 정신의 뒷바라지를 하고, 창의적인 정신은 창의적인 몸의 뒤치다꺼리를 한다. 창의성 속에서 몸과 마음이 서로의 뒤를 봐주는 것이다.  

결국 창의성은 어떤 느낌이 어떤 움직임이 되는가의 문제, 즉 느낌과 움직임 사이에서 발생하는 되기(becoming)의 문제가 아니던가? 창의성이 되기, 생성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느낌과 움직임 사이에서 수많은 '창의성의 작은 창들'이 열리고 닫히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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