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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관계는 강력한 장치다. 많은 임상심리학자나 상담사들은 개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저러한 기술이 아니라 관계 그 자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어떤 개입도 그 개입이 통할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 무용지물이고, 반대로 관계를 제대로 맺기만 하면 어떤 개입도 마법같은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명성이나 권위 같은 게 먹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명성이 드높고 권위가 강력하다는 것은 개입이 통할 만한 관계를 이미 벌어두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관계는 흔히 말하는 라포와는 다른 것으로, 개입과 치료를 위해 그때그때 상대에 따라 '발명'해내야 하는 것에 가깝다.  

관계는 가장 강력한 장치다. 관계는 다른 모든 것들을 넘어설 정도로 강력하게 작용한다. 강력하게 작용하는 관계는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자체로 권력이 된다. 따라서 모든 관계는 권력관계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 관계를 발명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권력을 발명하고, 분배하고, 조율하고, 때로는 탈취하거나 탈취당하는 정치적 활동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역학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그만큼 중요하지도 않을 것이며, 중요하지 않은 만큼 강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관계는 관계 같지도 않은 관계일 것이다.  

관계는 가장 위험한 장치다. 관계가 권력관계인 줄 의식하지 못한 채, 정치적인 줄 인식하지 못한 채 관계를 맺는 것은 어린 아이에게 기관총을 쥐어주는 꼴이다. 자신과 타인 모두 다 위험하다. 나도 모르게 관계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건 아닌지, 반대로 내가 남의 관계권력에 휘둘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항상 민감성을 유지해야 한다. 관계역학에 민감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안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누가 칼 들고 협박이라도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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