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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

이야기

"우리는 이야기를 너무 좋아합니다. 소설들 좋아하시죠.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란 그런 소설, 에세이, 드라마, 영화, 나아가 농담이나 전설, 일화까지 다 포함하는 겁니다. 전부 다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야기에 환장한 것 같아요. 아주 유치하고 이상한 것도 욕하면서 보잖아요? 대체 왜 그럴까요? 도대체 왜 그렇게 이야기를 좋아할까요?"

"다소 놀랍게도,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자아가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남이나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에요. 나 자신이 바로 이야기, 내러티브라는 겁니다. '같은 것이 같은 것을 알아본다' 또는 '같은 것이 같은 것에 끌린다'는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끼리끼리 논다', '유유상종'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가 서사에 놀아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하나의 서사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놈들끼리 만나 신나게 붙어먹고, 지지고 볶는 거죠.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 다른 게 아닙니다. 우리가, 세계가 서로를 편집 중인 텍스트, 이야기인 겁니다."

"우리는 정말 이야기를 통해 '교감'하고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냥 우리와 상관없는 '어떤' 이야기들이 '교미'하고 '번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런데 명상은 바로 그런 이야기, 소설, 드라마를 끊어버리는 겁니다. 우리의 자아가 떠벌떠벌, 어쩌구저쩌구, 조잘조잘, 낄낄, 흑흑이라면, 명상은 거기다 대고 메에에에에에에에롱을 하는 겁니다. 소설 쓰지 말고 다큐 찍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자아에 대해서라면, 이야기에 대해서라면 명상은 본질적으로 무례하고 폭력적입니다. 이야기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깜빡이도 안 켜고 훅 치고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너무 무례해서 자아는 깜짝 놀랍니다. '네가 감히 내말을 끊어?'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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