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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

첫번째 탈주. 철학사에 굳이 끼워넣자면 쇼펜하우어는 칸트 이후의 관념론에 속할 것이다. 실제로 칸트에 대한 대강의 이해 없이 쇼펜하우어를 제대로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타의 관념론들과는 달리, 쇼펜하우어의 관념론에서는 관념적인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관념론들은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이념적인 또는 이상적인 것을 지향하기 마련인데, 쇼펜하우어의 관념론에서는 그런 지향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탈이상화된 관념론'이라고 할 만하다. 아이디얼한 것에 대해 말을 아끼는 아이디얼리즘인 셈이다.  

두번째 탈주. 신랄하게 세속을 조롱하고 단호하게 인간들의 '급'을 나누는 그의 윤리는 명백히 보수적이고 귀족적이다. 그런데 이런 윤리관은 역설적으로 당대에 형성 중이던 시민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당대 유럽 문화와 인간형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비판은 너무나 예리하고 섬세한 나머지 니체가 그의 아류로 보일 지경이다. 말하자면 쇼펜하우어의 귀족주의는 '탈부르주아화된 귀족주의'인 것이다. 이런 비판적 성격 때문인지, 호르크하이머는 쇼펜하우어를 "혜안의 염세주의자"라며 극찬한 바 있다.

세번째 탈주. 불교는 이미 서구화된지 오래다. 그런데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는 불교를 서구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구 사상을 불교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불교적 사유는 반동적인 오리엔탈리즘이 아니었다. 그는 당대에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정보에 근거하여 인도철학과 불교를 진지하게 연구했으며, 이는 그의 철학을 '탈서구화된 서구 사상'으로 만들었다. 그의 불교적 사유가 너무나 이질적인 나머지, 아직도 어떤 연구자들은 불교적 사유를 쇼펜하우어의 '한계'나 '역설'로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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